여행후기 목록

여행을 다녀온 고객분들의
솔직한 여행 이야기
1
출발! 인천 프랑크푸르트
탄핵정국으로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게 민망해 여행의 설렘이 반감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난다. 인천공항에 도착 참좋은 여행사 가이드를 만나고 키오스크에서 항공권을 뽑고 셀프로 케리어를 부치는 것까지 무사히 마치고 1층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검색대를 통과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24번 게이트에서 기다리다가 탑승한다.
정확히 9시에 비행기가 움직이고 20분 후에 8,550km의 프랑크푸르트를 향하여 이륙한다. 영화도 몇 편 보고 이것저것 화면과 씨름도 하고 뒤척이다가 14시간이 지나니 환승지로 익숙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다. 이곳 시간으로 오후 315, 한국시간으로는 1115분이다. 시차가 8시간으로 오늘 하루는 32시간이 되는 셈이다.
인솔자 겸 가이드 박상현과 일행 33명을 만나 검색대를 통과하고 짐을 찾고 밖에 나오니 제법 쌀랑한 공기가 우리를 맞는다.
버스에 올라 30여 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가기까지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듣고 소파 하나 없는 로비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객실로 들어간다.
 
                  
 
 
2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뤼데스하임 바덴바덴 오펜브르크
자다 깨고 또 자다 깨도 아침이 안 온다. 시간 맞춰 일어나 조식을 먹고 마인츠로 출발한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선선하다. 12시간 운행, 3시간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타코 시스템에 관해서 설명하면서 체코인 카말 기사를 소개한다.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대관권을 가진 대주교의 도시 마인츠는 중세 독일의 가장 강력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구텐베르크의 고향이자 종교개혁의 실마리를 제공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마인츠에 도착, 라인강 변에 하차하니 가지치기를 한 가로수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독일 3대 성당중 하나인 마인츠 대성당(쾰른 성당, 트리어 성당) 으로 가니 아직 문이 열리기 전이라 일단 설명을 듣고 오픈 시간에 맞춰 안으로 들어간다.
마인츠 대성당975~1011년에 붉은 사암으로 웅장하게 지어졌으나 여러 번 화재와 폭격으로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고딕,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혼재되어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고, 동쪽과 서쪽에 각기 다른 양식의 탑이 세워져 있다.
내부로 들어가니 특이하게 서쪽에 제단이 있는데,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웅장했으며, 천장은 고딕양식 풍이 두드러져 보였다. 밖으로 나오면 중정이 나오고, 회랑 복도가 정원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성당 출입구 앞에 성 보니파키우스의 동상이 있다. 그는 초대 마인츠 대교구장으로 게르만인들에 대한 전도에 큰 노력을 쏟아부었던 주교이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마르크트 광장 한구석에 구텐베르크 동상이 있는데, 마인츠에서 태어난 그는 1837년 금속활자를 발명해 출판업계에 획기적인 혁명을 가져왔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으로 가는 길에 신기한 조형물을 만나는데, 카니발 분수이다. 카니발의 기쁨과 혼돈을 여러 얼굴로 표현한 광대들의 모양을 청동으로 만들어 붙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인츠의 카니발은 독일에서 이름난 축제라 한다. 브라질의 카니발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990년 가톨릭교회로 건립된 성 슈테판 교회는 고딕양식의 교회였으나 여러 번의 증축과 개축을 거치게 된 데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폭격으로 교회 건물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1978년부터 샤갈에 의해 교회 내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기 시작했다. 전쟁과 유대인 박해로 인해 독일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쌓였던 해묵은 감정들을 화해와 화합으로 승화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독일 내에서 샤갈의 글래스가 장식된 것은 성 슈테판 교회가 유일하고, 또 샤갈이 사망한 1985년까지 작업했던 최후의 작품으로 남아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이곳도 문이 열리지 않아 주변을 산책하다가 다시 정문으로 왔다. 초록색 정문 손잡이는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던 것을 의미하는 물고기와 빵 바구니 모양이 그려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푸른 빛이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교회 전체의 분위기에 감도는 푸른 빛의 신비로움도 오묘하다. 샤갈의 작품을 보는 재미도 느껴본다.
 
        
뤼데스하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상류 라인 계곡이 시작되는 강변의 예쁜 마을인데 독일의 대표 포도 산지로, 와인산업으로도 유명하다.
와인시음장에 가서 화이트와인과 아이스와인 등 6가지의 와인을 맛보는 데 비교적 단맛이 강하다. 시음장을 나와 라인강가를 걸어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드로셀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식사 장소로 이동해 한참 동안 기다려 슈니첼과 후식 아이스크림으로 점심을 먹고 바덴바덴으로 간다.
 
      
바덴바덴은 소도시임에도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도시다. 19819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온천 도시답게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시설과 요양시설이 있다. 1839년에 지어진 트링크 할레는 사람들이 온천수를 마시던 곳이다. 90m 길이의 긴 회랑이 인상적이다. 트링크 할레 건물 앞에는 1871년 독일 통일을 이룬 초대 황제 카이저 빌헬름 동상이 있다. 회랑에는 바덴바덴 지역의 전설 이야기가 14개의 프레스코 벽화로 남아있다. 내부로 들어가니 온천수가 흘러나오지만 마시지 말라고 되어있다. 2021년 유럽의 온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넓은 잔디밭과 꽃밭이 잘 가꾸어진 쿠어가든 중심에 쿠어하우스가 있다. 8개의 백색 코린트 기둥이 웅장하다. 쿠어하우스는 자연치유의 집이라는 뜻으로 온천과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내부 홀에서 콘서트나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88 올림픽 개최지도 이곳에서 발표했다.
옆에는 유명한 카지노가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가산을 탕진하다시피 했다는 200년 된 카지노 쿠어하우스를 밖에서 조망하고 시내를 배회하다가 식당으로 가서 짜디짠 햄과 구운 감자 것, 찐 양파로 된 레베케제라는 독일 전통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바덴바덴은 꽃의 도시로도 기억될 것 같다. 화사하게 만개한 하얀 벚꽃과 우람한 가지를 맘껏 자랑하는 자목련, 여기저기 피어있는 노랑과 하얀 수선화가 우리를 반겨준다.
숙소가 있는 오펜브르크를 향해 가는 길에 멀리 만하임이란 도시가 보이는데 그곳은 오늘날 벤츠를 있게 한 벤츠의 아내 베르타벤츠의 친정이란 얘기도 듣는다.
오늘 하루도 꽉 찬 일정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게 된, 곱고 붉은 노을과 나무들의 실루엣은 매우 인상적이다. 숙소 도착 후 바로 앞 마트에 가보니 물건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아주 크다. 몇 가지 물건을 사 들고 들어와 숙면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3
오펜브르크 티티제 콘스탄츠 울름
오늘도 화창한 날씨로 시작한다. 길이 160km 폭이 50km의 침엽수림이 길게 이어져 있다는 슈바르츠발트을 찾아가는 길은 초지로 구릉을 이루는 곳이 대부분이다.
검은 숲은 독일어로 슈바르츠발트라고 한다. 숲이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울창함에 하늘을 볼 수 없어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워 검은 숲이라고 부른다. 서쪽과 남쪽 끝에는 라인강이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고도 1,493m에 이르는 펠트베르크이며, 이 펠트베르크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것이 티티제 호수이다.
 
     
독일의 시골길을 두어 시간 달려 인기 휴양지 티티제에 도착하여 호수를 둘러본다. 생각보다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오리 떼가 노니는 호숫가를 거닐기도 하고 10시 정각에 울리는 뻐꾸기시계와 회전하는 인형도 보고 숲 입구에 가서 얼마나 검도록 울창한가를 살펴본다. 나오는 길에 찻집에서 에스프레소 맛도 즐긴다. 그런데 모일 장소를 못 찾아 헤매는 바람에 10여 분을 늦는 불상사도 있었다.
 
다음 목적지 콘스탄츠로 가는데 이곳과 관련된 역사한 토막을 듣는다.
콘스탄츠 공의회1414년에서 1418년까지 4년간에 걸쳐 29명의 추기경, 100~200명의 주교, 신학자, 법학자가 각국에서 모여 회의를 주도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 회의는 헝가리, 크로아티아 왕국의 국왕이자 독일 왕 지기스문트의 주관하에 서방 교회 대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콘스탄츠에서 소집된 공의회로 이때 로마, 아비뇽, 피사에서 난립하는 교황들을 퇴위시키고 마르티노 5를 새 교황으로 선출해 가톨릭 분열을 수습했으며, 체코인의 정신적 지주인 얀 후스를 공개재판에 세워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한 일들을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공기에서 빵과 죽음을 만든 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도 듣는다. 하버는 질소 정제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인공비료의 개발을 가능케 하였다. 이로써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던 식량 생산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 공로로 그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하버는 독일을 위한 비뚤어진 애국심에 사로잡혀 1차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독가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하버가 개발해 놓은 독가스는 훗날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생전 그는 순전히 애국심으로 조국인 독일을 도울 발명에 힘썼지만, 1차세계대전 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몰아치자, 독일을 떠났다. 그리고 추방된 다음 해 스위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점심으로 들린 곳은 바로 라인강 곁이다. 화장실에 가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물이 참 맑다. 토마토소스와 스파게티를 조미김과 같이 먹고 길을 떠난다.
 
         
콘스탄츠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린 곳의 바로 옆이 스위스인데 사람도 차도 아무런 절차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역사적인 콘스탄츠 공의회장 건물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3층짜리 석조 건물로, 항구 바로 옆에 있으며, 멀리서도 눈에 띈다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 중이란다.
360도 회전하는 임페리아 상도 보인다. 콘스탄츠 공의회를 풍자한 것이라고 한다. 한 창녀가 황제와 교황을 모두 유혹해서 권력을 손에 넣는다는 것을 의미한 풍자적인 작품으로, 한 손엔 교황을, 한 손엔 국왕을 들고 라인강의 시작점이라는 보덴호를 배경으로 계속 회전하고 있는데, 차에서 들은 역사 얘기와 연관 지어 바라보니 의미 있게 보인다.
구시가지로 발걸음을 옮기니 광장에 카이저 분수가 있다. 4명의 황제 조각상으로 장식된 분수이다. 4명의 황제는 프로이센의 빌헬름 1’,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 ‘하인리히 3로 청동이 아니라 철로 제작하였다. 카이저 분수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공작새가 머리에 교황이 쓰는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교황청의 그릇된 권력의 남용을 풍자한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말 조형물에 올라 타보기도 한다.
카이저 분수 뒤로 외벽에 온통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역사적 내용을 그려놓았다. 호텔 및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슈테판 교회는 좁고 긴 특이한 구조라서 커 보이지 않지만, 내부는 크고 단정하다. 이 자리에는 고대 로마제국 시절부터 교회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목조 건축물로 성 슈테판의 가호를 위해 콘스탄츠의 주교가 만들었다고 한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계속 증축 또는 보수되면서 여러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건물의 큰 틀은 로마네스크, 내부 장식은 고딕양식을 많이 활용하였고, 훗날 추가된 바로크 양식의 조각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교회 외벽에 세로로 나란히 서 있는 동상도 유명하다. 아래는 성 네포무크’, 위는 성 슈테판의 동상이다. 네포무크는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신부였는데, 왕비에 대한 고해성사의 내용을 밝히라는 왕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교회 내부를 둘러보고 케이크도 사고 구시가지를 배회도 해본다. 화장실 사용에 얼마나 인색한 곳인지를 실감하면서 콘스탄츠를 떠난다.
콘스탄츠는 독일 대부분의 도시와 달리 전쟁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은 도시이다. 스위스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 스위스와 같이 불을 켜서 연합군의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도시 하나가 도나우강을 경계로 주가 나뉜다는,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출생지라는 울름에 도착하니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고딕 탑이 하늘로 육중하게 솟아있는 성당을 지나서 100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차로 돌아갈 때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4
울름 슈투트가르트 헤리에덴
 
      
새벽에 비가 내린다. 8시까지 온다는 예보가 11시로 바뀌는 것을 보니 종일 내릴 수도 있겠다. 우산을 받고 도나우강이 흐르는 울름 시내로 가서 어부의 마을을 보러 간다.
중세 어부들이 수로를 만들고 강물을 끌어들여 살았던 지역을 잘 보존해 놓은 마을이다. 곳곳에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보존 상태가 좋아 동화 속 마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무로 벽에 사선이나 직선을 기둥같이 해놓은 중세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본다.
건물의 절반이 물 위에 기울어진 채로 남아있는 쉬프하우스로 갔다. 원래 생선을 보관하던 곳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받침대가 가라앉았고, 건물이 통째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스폿으로 자리 잡았다. 건물이 더 기울지 않도록 보수공사를 했으며 현재는 호텔로 용도가 바뀌었단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보이는데 가장 비싸고 인기 좋은 호텔로 이용된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유리로 지은 피라미드 모양의 시립 도서관을 지나 지붕이 특이한 구시청사 앞에 섰다. 건물의 외벽 전체를 프레스코화로 치장하고 있어 화려하다. 벽면 중앙에 있는 금빛 천문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구시청사 뒤로 신시청사가 있다.
 
     
다음 목적지는 울름 대성당이다. 원래는 가톨릭교회였으나 1894년부터 개신교교회가 되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딕 성당으로 161m의 가장 높은 탑을 가지고 있다. 1377년 착공되어 설계의 변경과 종교개혁 도중의 우상 파괴 운동으로 인한 손상 및 복원을 거쳐 1890년 완공되었다. 정문 앞에서 교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유시간을 가진다.
교회 앞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농산물 마켓이 열렸다. 하지만 날씨가 어설퍼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려보다가 교회 내부로 들어간다. 웅장한 기둥들 그 끝에 나뭇가지를 형상화하고 양옆과 앞뒤로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장식된 교회이다.
잠깐 들렀다 떠나기는 아쉽지만, 울름에 안녕을 고하고 벤츠와 포르쉐의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로 향한다.
 
    
슈투트가르트 도착 후 동네를 돌아 철길을 건너 점심을 먹고 벤츠박물관으로 간다.
우주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위층으로 올라 빙글빙글 내려오면서 관람하는데 벤츠의 역사와 변화에 관한 전시와 초기 이동 수단부터 현재, 미래까지의 발전 과정에 관한 전시품을, 시간여행을 한 듯 1800년대 후반의 자동차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창기 자동차는 마차의 대체품이라 지금의 자동차보다는 마차와 더 닮은 모습이다. 초기 자동차 복원품은 물론이고 자동차 엔진과 설계도 등 세세한 자료와 유물들도 남아있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눈부시게 화려한 올드카, 이상야릇한 모습을 한 별별 차들을 지겹도록 본다.
 
   
밖을 나오니 비는 그쳤는데 바람이 제법 분다. 차로 이동해 시가지 구경을 한다.
먼저 950년에 지어진 올드캐슬을 지나 쉴러광장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쉴러를 만나고 여성 형상을 조각한 슈터카센 분수대를 지나 슈티프트 교회로 간다,
루터파 복음교회이다. 교회의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독일의 다른 도시에 비해 시가지 중심에 교회가 별로 없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중심적인 교회이기도 하다.
10~11세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여러 차례 재건축되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후 1950년에 복구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
 
    
네모난 건물, 네모난 창문, 네모난 시계탑 등 온통 네모로 구성된 시청사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현대적인 외양을 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사가 있었으나 전후 도시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현대식 건물로 대체되었단다.
르네상스 양식의 구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안뜰에 에버하르트 1의 기마상이 있다. 구 궁전은 오늘날 주립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바로 앞의 신 궁전에도 프로이센의 황제 카이저 빌헬름 1세 기마상을 보고 아케이드가 있는 실내 마켓, 왕의 길이라는 쇼핑거리를 걷다가 약속된 장소로 오니 벼룩시장이 막 파장을 하는 중이라 대강 둘러보고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숙박지인 헤리에덴이란 시골 마을로 간다.
 
버스 안에서는 ABBA의 역사와 더불어 향수를 자극하는 옛노래가 흐르고 창밖은 끝없는 초원 지대가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풀인지 밀인지 초록의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도 더러 있어 평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삶의 한순간 횡재를 얻은 기분으로 오후를 보내고 호텔로 들어서니 미로 같은 구조로 제법 큰 곳이다. 주차장에 차들도 아주 많다. 들판 가운데 딱 한 채 적막하게 서 있을 호텔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짐을 풀고 호텔 안에서 식사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5
헤리에덴 로텐부르크 드레스덴
새벽에 깨어 핸드폰을 보니 시간이 바뀌었다.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썸머타임을 실시한단다.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재미도 맛본다. 왠지 한국과 조금 가까워졌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아침 식사 중 창밖을 보니 하늘이 근사하게 붉어 오더니만 눈 부신 태양이 떠오른다. 기대하지도 않은 일출 광경을 목격하는 축복도 누려보는 아침이다.
호텔 앞길 건너에는 차창 밖으로만 보았던 너른 밀밭이 펼쳐져 있다. 건너가 밟아도 보고 사진의 배경으로도 남겨본다. 조용하고 깨끗한 전원 풍경이다.
 
    
30여 분을 달려 타우버강을 끼고 있는 로텐부르크에 도착하니 날도 추운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한산하기 짝이 없다. 구시가지의 성벽 출입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시청사가 있는 마르크스 광장까지 이어지는 슈미트 골목을 걸어본다. 가게마다 내건 황금빛 간판이 골목 풍경을 완성한다. 걷다 보니 가장 유명한 포토죤 플뢴라인이 등장한다. 그림 같은 로텐부르크의 시가지 중에서도 가장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경사가 다른 갈림길의 양쪽 모두 길 중앙에 탑이 서 있고, 그 사이의 좁은 목조주택, 그리고 양편의 건물들과 돌바닥까지, 모든 것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왼쪽에 높이 서 있는 탑은 지버스 탑’, 오른쪽의 탑은 코볼첼러 문이다.
시청사 앞 마르크트 광장에 모여 가이드의 안내 사항을 듣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바람도 차고 썰렁하다.
 
1484년에 완공된 고딕양식의 야곱 교회로 갔다. 이 교회가 유명한 것은 틸만 리멘슈나이더가 조각한 성혈 제단이다. 예수님의 피가 담겼다고 전해지는 성스러운 유물이 이 제단 안에 보관하고 있단다. 문을 열지 않아 내부는 못 봤지만, 교회 앞에 성 야곱 동상이 있다. 이 교회의 수호성인이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의 상징적인 인물인 야곱을 기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순례자의 복장을 한 야곱 동상의 반짝거리는 검지를 만지며 우리 남은 여행의 안전과 축복을 빌어본다.
 
    
 
1595년에 제작된 헤른 분수도 만난다. 기둥에는 물고기 꼬리가 두 개 달린 인어 장식이 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다 보니 멋진 사진 포토죤도 만나고 고풍스러운 가게와 집들도 실컷 보는데 365일 크리스마스용품을 파는 가게는 문이 닫혀 아쉽다.
성문 밖으로 나오니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다시 성안으로 들어와 2팀으로 나누어 이곳의 명물인, '눈 뭉치'라는 뜻으로, 30년 전쟁 당시 전쟁에 대비하고자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둥글게 뭉쳐서 튀긴 다음 설탕, 시럽, 과자 가루, 초콜릿 등을 발라 만드는 과자 슈니발렌과 커피를 마시고 일부는 성곽 위에 긴 회랑이 데크길처럼 만들어져 있는 길을 걷는다.
 
11시가 되어 시청사 앞으로 가니 아침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들었다. 매시 정각에 보여주는 시계탑 인형극을 보려는 것이다.
로텐부르크는 30년 전쟁 때인 1631, 틸리장군이 이끄는 가톨릭 세력의 군대가 쳐들어와 도시가 함락당하고 승전한 틸리장군은 누쉬시장에게 주민 숙청을 명령하여 사실 주민이 몰살당할 처지에 있었다.
누쉬시장은 틸리장군을 불러 연회를 열고 자비를 간청하자, 술에 취한 틸리장군은 그 자리에서 시장이 3.25L짜리 포도주 한 통을 모두 마시면 명령을 거두겠다고 했단다.
평소 술을 못 마시던 누쉬시장은 도시를 살리기 위해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고, 틸리 장군이 약속을 지키면서 로텐부르크 사람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단다.
매시 정각이 되면 창문이 열리고 두 사람의 인형이 나오는데, 오른쪽 인물은 술을 마신다. 이 인형극은 17세기에 있었던 흥미로운 실화를 재현한 것이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3.25L의 맥주를 한 번에 마셔야 했던 미션을 기억하기 위한 귀여운 이벤트가 있어 관광객들의 재밌는 기억을 하나 보태주는 것 같다.
 
성문을 나오기 전 중식집에서 모처럼 쌀밥이 나오는 점심을 먹고 드레스덴을 향해 달린다.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데 유능한 가이드 덕에 오롯이 그 시간을 만끽할 수가 있어 정말 좋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도 옛 추억을 소환시키는 노래들도 시간 가는 게 아까울 정도다. 거기다 차창 밖에 보이는 너른 밀밭과 가끔 나타나는 파스텔톤 색의 집들이 정겹게 마을을 이루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어 더욱 로맨틱해진다.
 
   
날이 궂어 더 어둑해진 드레스덴은 고색창연 그 자체다. 죽기 전에 봐야 할 건축물 중 하나라는 젬퍼 오페라하우스, 1894년 드레스덴 봉기로 불에 타자 고령의 젬퍼가 다시 설계하고 아들의 손으로 복원하였다. 앞의 거대한 동상은 재건을 승인한 작센 국왕 요한의 청동 기마상이다.
 
   
바로 옆 정사각형으로 성곽처럼 궁을 짓고 그 안엔 정원을 만들어놓은 츠빙거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18세기 초 강건왕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현재는 미술관 박물관 전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외관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38명의 성인상을 볼 수 있는 강건왕이 만든 가톨릭 왕실교회, 작센 선제후들과 왕들이 실제 거주하던 궁전으로 약 800년의 역사가 있는 레지덴츠 궁전이 가운데 전찻길을 두고 빙 둘러있다. 오늘날의 모습은 1701년에 소실된 궁전을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긴 성벽에 군주의 행렬이라는 역대 군주들의 벽 장식이 100m가 넘게 이어져 있어서 장관이다. 도시가 파괴되면서도 이 벽화만은 무사하였다는 점도 유명하지만, 이 벽화는 벽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타일에 그림을 그려서 이어 붙인 타일화이어서 더 유명하다.
 
   
루터파 교회인 프라우엔 교회(성모교회)’로 갔다. 앞에는 종교 개혁자 루터 동상이 세워져 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폭격을 당해 교회가 무너졌고 시민들이 무너진 돌조각들을 모두 보관했다가 이후 후원금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언제 다시 지어질지도 모르는 교회 건물의 잔해를 번호까지 매겨가며 보관했다고 한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괴테가 유럽의 발코니라고 극찬했다는 브륄의 테라스로 간다. 엘베강을 따라 방어 성벽이 있던 자리에 브륄이 대저택, 도서관 미술관 등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하면서 강변의 아름다운 건축물 앞 발코니처럼 쾌적한 공간이 되어 브륄의 테라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브륄의 테라스 시작점에서 엘베강을 건너는 아우구스트 다리는 그 자체로도 중세의 고풍이 느껴지는 석교이면서 엘베강과 브륄의 테라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드레스덴 신시가지와 엘베강 풍경을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이다. 브륄의 테라스는 발코니라고 하기보다는 넓은 길 같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어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날이지만 여기저기 찾아다녀 본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호텔에 들어와 지친 몸을 뉘어본다.
 
 
6
드레스덴 바슈타이 베를린
 
    
3월의 마지막 날. 오늘도 비 오고 바람이 불고 어설픈 날씨다. 독일의 전형적인 날씨인 듯하다. 그래도 우린 출발해 바슈타이,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을 향한다. 엘베강을 따라 그림 같은 산악지대가 절경을 뽐낸다. 18세기에 스위스의 화가가 자신의 고향과 비슷하다며 작센 스위스라 표현한 것이 국립공원의 이름이 되었다. 중국 장가계를 떠오르게 하는 바위들이 멋지게 숲을 이루고 있다. 작센 스위스가 아니라 작센 장가계로 정정하고 싶어진다. 곳곳을 사진에 담고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향해 달린다.
 
버스에서 로켓을 제작하여 히틀러에게 도움을 주고만 베르너 폰브라운’, 나중엔 미국 나사에서 달에 우주선까지 보낸 집념의 사나이 얘기도 듣고, 어렸을 때부터 트로이에 대한 믿음으로 기어이 그걸 발견한 하인리히 슐리만’, 25세에 7개 국어까지 배워 결국은 꿈을 이루고 만 슐리만 얘기를 듣다 어느새 베를린에 도착한다.
호도리라는 한식집에서 된장찌개로 점심을 먹고 베를린 여기저기를 돌아본다.
 
   
먼저 독일 통일의 역사적인 장소인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간다.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으로 1791년에 완성된 개선문인데 베를린이 분단되었을 때 동서의 경계가 되어 분단의 상징이 되었고 장벽 붕괴 후 서독 총리가 이 문을 통하여 동베를린에 들어가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된 문이다.
문 꼭대기에 있는 4필의 말이 이끄는 전차를 탄 평화의 여신 빅토리아1806년에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갔다가 1814년 프로이센이 되찾아 다시 설치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관광객이기보다는 체험학습을 나왔을 것 같다. 문 앞쪽으로는 각국 대사관들이 양쪽을 메우고 있다.
 
  
그곳을 지나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만난다. 나치 집권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크기가 다른 직육면체 돌들을 석관처럼 세워 두었다. 표지판 하나 없어 설명을 듣지 않으면 건축 자재를 모아놓은 줄 알겠다.
무너진 장벽이 남긴 도로를 계속 걷는데 포츠담광장 사거리도 나오고 무너지다 만 벽들을 일부 남겨 교육의 장으로 쓰는 데도 나온다. ‘공포의 지정학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이전 나치 시대 대부분의 범죄를 계획하고 온갖 테러를 처리하기 위한 비밀경찰의 본부였다. 현재는 건물을 허물고 기념관을 건립하여 나치의 공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장소가 되었는데, 우리는 야외에 설치한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껴본다.
 
   
1961년 완성되고 1989년 파괴된 장벽을 걷다 보니 동서독 대치 상황을 보여주는 장소가 나오는데 동서독을 오갈 수 있는 서독 측 체크포인트 찰리이다.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 및 동독으로 넘어가는 검문소는 여러 곳이 있었는데, 체크포인트 찰리는 외국인이 통과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검문소였다고 한다. 검문소 앞에서 사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도 기다리다가 인증사진 찍고 서쪽 지역으로 넘어가 카이저 빌헬름교회로 간다.
독일을 통일하고 초대 황제가 된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리기 위해 당대 최고로 화려하게 건축한 교회였지만 폭격으로 첨탑 일부만 남고 본체는 없어져 버렸다. 전쟁의 참상을 후손에게 교육하려고 파손된 상태로 남겨두고 그 앞에 현대식 건물을 특이하게 지어놨다. 공중에 떠 있는 예수상, 가운데는 유리에 색으로 무늬를 낸 네모난 시멘트 벽돌로 이어 붙여 만든 둥근 벽면,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등이 별스러워 인상적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온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포근하게 앉아 쉴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인상 깊다. 바로 옆이 최대 번화가라는 쿠담 거리라는데도 가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편히 앉아 예수님의 위용을 느껴본다.
닭구이와 날아다니는 쌀밥으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온다.
 
 
7
베를린 에르푸르트 아이젠아흐
 
   
하늘이 모처럼 화창하다.
오늘 처음 방문지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베를린 장벽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붕괴 또는 철거되지 않은 1.3km의 베를린 장벽은 야외 미술관이 되었다. 통일 직후부터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그려진 벽의 방향이 동베를린이었기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라 부른다. 슈프레강을 중심으로 장벽이 이중으로까지 설치된 곳은 동독 지역인데 강 건너 저쪽은 서독 지역으로 강가에 드리워진 풍경이 막 피어오른 버드나무 가지와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 저 위에 보이는 오버비움 다리까지 확연히 보인다. 지금은 역사가 되었지만 1961년에 세워진 장벽이 1989년 무너지기까지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삶이었을까 생각하니 유유히 흐르는 슈프레강이 그저 편안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슈프레강으로 생긴 섬에 박물관이 여러 개 있어 섬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에 가서 그중에 우린 신 박물관을 관람한다. 슈튈러의 설계로 1859'새로운 박물관'이 개관했다.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을 당하고 약 70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통일 이후 2009년에 재개관을 하였다. 주로 고대 이집트와 프로이센 시대의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네페르티티의 흉상으로 전시실 하나를 차지하고 사진 촬영은 못 하게 하는데 기원전 4세기경의 이집트 조각상인 그린 헤드와 함께 이 박물관의 주인공인 듯하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베를린 대성당’, ‘구 국립박물관이 있다. 밖에서 인증샷하고 점심 먹으러 간다. 중식 뷔페로 배불리 먹고
 
에르푸르트로 출발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과 아직은 다듬어 놓기만 한 경작지들이 연속 나타나는 길을 달린다. 가이드의 역사 이야기와 음악사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듣다 보니 지루한 줄 모른 채 시간을 보내며 튀링겐주의 주도인 에르푸르트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언덕 위에 세워진 에르푸르트 대성당으로 간다.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1,2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며 루터가 사제서품을 받은 곳이다. 1278년부터 1400년까지 120여 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지금은 에르푸르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대성당 옆에 3개의 첨탑이 있는 세베리 교회가 있는데 그 중 가운데 첨탑에는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의 종 글로리오사가 있다대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높은 아치형의 천정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대형 파이프오르간 등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이런 조그만 마을에 이런 규모의 성당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성당을 나와 루터가 공부했다는 에르푸르트 대학교를 찾아가는 길은 골목 자체가 자꾸 눈길을 끌게 할 만큼 정겹고 예쁘다. 색감도 아기자기하여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곳이다. 에르푸르트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튀링겐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로 출발한다.
 
아이제나흐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 장소로 가는 길에 니콜라이 문이 있다. 1170년경 지어졌는데 5개의 문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이다.
저녁을 먹고 숙소까지 걸어오는데 쌀랑한 밤바람마저 상큼하다. 여기서 드디어 여정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8~9
아이젠아흐 프랑크푸르트 인천
호텔 창문 앞 풍경이 고즈넉하니 정겹다. 하얗게 뿜어나오는 연기도, 야트막한 산을 뒤로한 그림 같은 집들도.
아침을 마치고 출발 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싸늘한 아침 공기가 시가지를 더욱 청량하게 한다.
 
 
       
바흐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된 바흐하우스는 현재는 바흐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이른 시간으로 내부는 들어가질 못하고 루터하우스로 간다.
루터가 1498년부터 1501년까지 라틴어 학교에 다니기 위해 머물렀다는 집이다. 2015년에 대대적으로 새롭게 단장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제나흐의 대표 가     옥 중 하나로 외관은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게오르기 교회로 간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졌지만 이후 고딕과 바로크 양식으로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바흐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고, 루터가 이곳에서 설교를 한 곳으로, 두 역사적 인물을 한자리에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교회 입구 안쪽에 바흐의 대형 동상이 우릴 맞이한다.
이 도시는 바흐와 루터 때문에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듯하다. 음악사와 종교사에 굵은 획을 그은 위인을 배출한 지역답게 품위 있는 곳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버일까? 호텔까지 돌아오는 길도 골목골목 눈길이 자꾸 갈 정도로 예쁘기조차 하다.
아이제나흐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를 향하는 길은 주로 소나무 숲이었던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길가에 막 연둣빛을 품은 잡목들이 많다. 그리고 동독 지역을 벗어나니 기분이 그런지는 몰라도 동독이 훨씬 더 경직되었구나 싶다. 풍경도 건물들도.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구시가지의 중심인 뢰머 광장으로 간다. 뢰머는 독일어로 로마인이라는 뜻이다. 문맥에 따라 조금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프랑크푸르트의 뢰머는 시청사의 이름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끝난 후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장소이며, 르네상스 시대인 1405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다른 도시의 시청사와는 달리 이 지방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양식으로 세 개의 삼각 지붕이 인상적이다. 광장 한가운데에 유스티티아 상이 검과 저울을 들고 서 있다.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힘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한 뢰머 광장은 목조 구조를 한 건물들이 광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 건물들을 오스트차일레라고 부른다. 15세기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15세기 쾰른의 비단 상인들이 지었던 건물들이라 한다. 현재의 건물들은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으로 중세 독일 거리를 대표하는 건축물 형태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다른 한쪽에 여행자와 상인을 보호하는 성인 니콜라이를 위해 헌정한 니콜라이교회가 붉은 사암과 고딕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서 있다.
 
      
건물 뒤편으로 이곳의 랜드마크인 대성당이 아름답게 장식된 뾰족탑을 턱 하니 보여주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출과 대관식이 열리던 장소로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내부는 엄숙하고 웅장한 분위기로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섬세한 제단 장식이 인상적이다.
 
   
다시 골목을 나오니 마인강이 딱 버티고 있다. 그 마인강 위에 보행자 전용 다리인 아이제르너 다리를 놓았다. 철교라는 뜻이란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자물쇠 너머로 마인강이 흐르고 유람선도 지난다. 다리 위에서 보이는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며 사진에 남긴다.
 
단골이라는 한식당에서 순두부탕으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간다. 그동안 수고한 체코 기사 카밀과 인사를 나누고 공항 안으로 들어간다. 에스컬레이터 탈 때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주의 사항이 화근이 되었는지 정말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긴 대기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탑승하여 11시간을 비행한 후 인천에 도착한다. 올 때는 갈 때보다 두어 시간이 덜 걸려서인지 그런대로 긴 비행을 견딜 만하다. 전주 가는 리무진을 기다리면서 여행의 회포를 풀어본다.
보고 듣고 느끼고를 몽땅하고 돌아오는 길은 만감이 교차하는 충만함으로 가득 차오른다. 몸은 비록 지쳐 있을지라도.
이런 여행이 가능했던 참좋은 여행사의 여행상품과 유능한 인솔자 겸 가이드 박상현님의 열정적이고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전달이 우리에게 더욱 알찬여행이 되었다.
이러한 여러 조건에 감사하면서 또 다른 여행을 꿈꿔본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2025-04-30 조성주(동유럽) 님

안녕하세요, 고객님
먼저 여행의 여독이 가시기도 전에 따뜻한 후기를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고객님께 소중한 추억을 안겨드린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길 바라며, 그 여정에 참좋은여행이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더불어 인솔자님과 가이드님 덕분에 보다 더 좋은 여행이 되셨던 것 같아 뿌듯한 마음입니다.
고객님의 감사 인사는 꼭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여행도 참좋은여행과 함께 해주신다면 고객님께 소중한 추억을 다시 선물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의 날들도 건강과 웃음으로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유럽팀 드림
(02-2185-1500)